저번에 제대로 못 본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도 다시 보고 싶고, 이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도 보고 싶어서 지난 주말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내용이라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최근 작품들인 첫 번째 장 전시가 소재나 내용에 있어서 가장 재미있었다. 특히 MMCA 커미션 신작인 야성적 본능이 가장 인상 깊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 미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취향이 잘 맞을 것 같은 전시였다.



<미션 완료: 벨란시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으로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강의 형식이기 때문에 관람객의 입장에서 친절하다고 느껴졌다(다른 내러티브 영상들과 비교해봤을 때). 히토 슈타이얼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어렴풋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지, 작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전시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관람하면 될 것인지 등등. 결말 부분이 되게 유쾌하다.





<소셜심>





<태양의 공장>


게임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계속 얘기한다. 그리고 영상에서는 현실과 가상세계를 계속해서 넘나든다. 영상 속 한 장면의 불빛은 led 조명으로 미술관 전시실에 물리적으로 연결된다. 현실과 가상세계(데이터 공간) 사이의 경계가 흐려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야성적 충동>

전시를 관람하기 바로 직전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늑대 개(1991)>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북미에서 늑대가 인간을 공격한 사례는 전혀 없습니다. 늑대는 미국 건국 초기에 대부분 멸종되었으며, 지금까지 인간에게 학대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늑대를 자연환경 보전지역으로 보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전국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마침 <야성적 충동>에 이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나와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양치기 넬이 늑대가죽을 뒤집어쓰고는 '멸종 위기 동물들은 사람들이 더욱 아껴준다'고 얘기하는 부분이다.(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남..)

<야성적 충동>을 보고 나서,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그럼에도 이를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같은 것을 느꼈다.
예술계를 떠나고 싶은 예술가는 공룡이라도 연기하고 싶다고 한다. 늑대를 혐오하던 양치기는 늑대 가죽을 쓰고 늑대가 되고자 한다. 크립토 콜로세움의 늑대는 콜로세움을 탈출하여 동굴로 향한다.
그러니까 약육강식의 논리가 극대화된 오늘날 사회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살아남기 위해 본성을 잃고 다른 존재가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디로 가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NFT와 비트코인에 대한 은유도 참으로 재미있고.



작품 소개? 이것의 명칭이 뭔진 모르겠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 같은 부분. 여기서 히토 슈타이얼이라는 작가의 매력을 또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이 미래다> + <파워 플랜츠>

빅데이터를 대표로 하는, 미래 예측 기술에 대한 회의를 보여주는 내용처럼 느껴졌다.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히토 슈타이얼의 재치.
마법 히토 슈타이얼 ㅎㅎ





<깨진 창문들의 도시>



<깨진 창문들>과 <깨지지 않은 창문들> 두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작품도 참 묘했다. 양극단의 한쪽은 파괴하고 한쪽은 창조한다. 파괴하는 쪽은 인공지능의 홈 보안 기술 발전을 위하여, 창조하는 쪽 역시 범죄 예방을 위하여.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5장으로 구성된 매뉴얼의 형식이다. 1장에서 5장으로 갈수록 안 보이는 방법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난다. 나는 이 부분이 어떻게 느껴졌냐면, 1장에서 5장으로 가는 것은 기술이 점점 발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안 보이는 방법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안 보이기가 쉽지 않게 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즉 점점 더 높은 강도의 감시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카메라에 노출되어 감시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스트라이크>



<타워>


<Hell Yeah We Fuck Die>
인명 구조를 위해 투입될 휴머노이드 로봇의 복원력 증강을 위해 로봇을 발로 차고 세게 밀치는 영상물이었다. 한 번도 이런 시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본 적이 없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날의 로봇>


<면세 미술>



관람 시간은 중간중간 쉬면서 대략 6시간 걸렸다. 그래도 모든 작품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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