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법정공휴일날. 월화 이틀 자유수영을 가서 열심히 저어서 그런지 왠지 에너지가 넘쳤다. 어디든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고 싶은 전시를 라인업하고 그중에 가장 끌렸던 <가면무도회>를 보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가기로 하였다.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역에 가서, 미술관 셔틀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갔다. 역에서 미술관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걸어서는 절대 못 갈 것 같았다. 물론 갈 수야 있지만 도착하면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대공원역에는 등산복을 입은 분들도 아주 많았고(어딜 가시는 거지?) 휴일이라 그런지 대공원이나 서울랜드에 가는 가족 단위 일행도 많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고 숲길이라 제대로 소풍을 가는 기분이 들어 너무 좋았다. 예전에는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놀이기구가 무섭고, 미술관이 꼭 내 새로운 놀이동산 같다.







과천관은 서울관과 비교했을 때 인파도 덜하고, 넓은 야외 공원에 조각 작품들이 있고, 자연 속에 둘러싸여서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도착했을 때 마침 스프링클러가 가동하고 있었는데 규칙적으로 물이 분사되는 소리,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방울, 물을 맞아 진한 색깔로 변하는 조각품과 잔디 어느 하나 안 예쁜 구석이 없었다.
티켓팅을 하고 먼저 <가면무도회>를 보러 갔다. 원형으로 된 전시실에서 전시를 하는데, 내 생각보다 볼륨이 컸다. 작품의 수도 꽤 많고 종류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덜 기괴하고 재미있었다. 2시간 조금 안 되게 관람했을까.





입장하여 전시관으로 가는 길목 벽면에 여러 개의 모니터와 스캐폴딩 구조물, 그라피티와 포스터 등으로 꾸며진 공간이 있다.
가면과 관련된 글귀, 캐릭터 등을 인쇄한 포스터가 다소 무질서하게 붙어있다. 모니터에서는 <Phantom of the Opera>의 <Masquerade>를 배경음악으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마스크를 쓴 캐릭터들을 편집한 영상이 재생된다. 그 유명한 <다크 나이트> 오프닝 장면으로 영상이 시작하는데, 익숙한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나와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실 영상을 보자마자 만도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당연히 만도는 나오지 않았고, 대신에 베이더가 나와서 반가웠다. 이 영상에서 베이더는 두 번 나온다.
입장하는 길에 있는 이 구조물 때문에 <가면무도회> 전시가 급 친숙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 <가면무도회>의 포스터는 꽤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가면이라는 소재가 내재하고 있는 이미지도 다소 으스스하지만, 빨간색과 검은색 톤만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파우스트 글귀를 무시무시한 서체를 사용해 인용한 것도 이 전시회에 대한 첫인상을 공포스럽게 형성하는 데 한몫한다. 물론 나는 후기를 찾아보고 흥미를 가졌지만, 그런 사전 정보 없이 포스터만 본 관람객이라면 이 전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구조물을 본 순간 정말 누구라도 친숙함과 익숙함,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무시무시해 보이게 세팅한 이 전시회를 기꺼이 보러 온 관람객을 환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대미술과 대중문화는 그리 멀지 않다고 말을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서서 일하는 사람들 #11> 양정욱
문에 쓰인 글귀를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글귀를 읽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고 얼마간 작품이 드러났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국현미 서울관 <너나의기억>에서도 양정욱 작가의 작품이 있었는데! 보자마자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서 반가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야 작품이 보인다는 장치가 일단 신기했다. 현대문명이 발전하며 소통이 어려워지고 인간이 소외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까? 불길한 붉은 조명과 작품의 움직임은 바로 다시 엘리베이터 문의 글귀를 생각나게 했다.

<브레스 #2> 김영균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여운이 많이 남았다.
공연자는 여러 가지 가면을 써보고 의상을 입어본다. 그중에는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와 같은 날카로운 뿔이 달린 가면이 있고, 천사인지 나비인지 그런 날개가 달린 의상도 있고, 플라스틱 호스가 달린 가면도 있다. 호스가 달린 가면을 쓰고 숨을 쉬면 귀를 괴롭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비명소리 같기도 하다. 내면에서 비명소리를 지르게 하는, 아무리 쓰기 싫은 가면이라도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써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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