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
교육학 이론에서 창의력 개발을 위한 방안 중에 ‘고든의 발견적 해결법(Synetics)’이라는 기법이 있다. 이는 서로 관련이 없는 요소들 간의 결합을 통해서 창의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해결방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법이다. 나는 「디지털 문화」에서 반문화적 사유와 신자유주의의 유사성에 대한 내용을 접했을 때, 교육학에서 배웠던 발견적 해결법이 얼핏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게 반문화적 사유와 신자유주의의 유사성이란 ‘서로 관련이 없는 요소들 간의 결합’ 같았던 것이다.
찰리 기어의 「디지털 문화」의 4장에서 찰리 기어는 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를 연결 지어 그 유사성을 설명한다. 언뜻 생각했을 때, 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를 연결 짓는다는 것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찰리 기어 역시 “처음에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신자유주의와 반문화를 여러 가지 근거와 사례를 들며 공통성을 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찰리 기어의 입장이 타당한 것인지, 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는 정말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반문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찰리 기어의 입장을 자세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반문화는 196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대하려는 문화이다. 1960년대는 베트남전쟁,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는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여러 저항 운동이 전개되었고,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학생운동은 주로 흑인에 대한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 그리고 주류사회나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 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는 가운데 반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히피문화가 생겨났다.
히피문화를 중심으로 반문화의 특성을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자. 주로 젊은 층과 학생, 지식인 등이 중심이 되었던 히피문화는 공동생활,, 마약 사용을 통한 영혼의 해방 추구, 자연주의, 동양적 신비주의 추구, 자유로운 성생활 등 수많은 독특한 문화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하기에도 다소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면이 있지만 히피 문화가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된 배경이 분명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히피문화가 형성된 배경은 베트남 전쟁에 따른 미국 사회의 불안과 실패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기존의 지배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쫓으며, 물질문명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억압된 성관념이나 노동윤리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반문화 운동은 샌프란시스코에 그 중심지를 두고 발생하였다. 반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1960-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한 지역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 지역은 바로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유력한 전자기기, 반도체 및 컴퓨터 관련 산업체가 밀집되어있는 지역이다. 이 시기 실리콘밸리에서는 컴퓨팅 테크놀로지의 개발에 한참이었다. 뜻밖이었던 점은 실리콘밸리의 공학자들이 단지 덤덤하게 기술 개발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반문화 운동과 결합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예로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있다. 애플사는 끊임없이 반문화적 이미지와 자신들을 연결하고자 하였다.
1980년대 미국에는 신자유주의가 대두된다.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념을 사용하였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여 최소한의 국민 복지와 국방 정도에만 관여를 하고, 시장이 알아서 기능을 하게 하자는 정치 이념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반규제, 민영화, 구조조정 등으로 대표된다. 신자유주의에서 따르는 주요 정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먼저 세금제도에서는 자본가들의 지속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자본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고자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에서는 사회 통합을 중요시하고 소수가 특권을 누리거나 보호받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자유무역을 지향하여 시장의 완전 개방, 자본 이동의 자율화, 관세 철폐 등이 이상적이라고 본다. 이는 현재 ‘세계화’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는 것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의 유사성에 대한 찰리 기어의 의견은 5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와 반문화는 모두 집단보다 개인을 우위에 둔다. 둘째, 신자유주의와 반문화 모두 조직과 관료체제의 폭정으로부터 개별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셋째, 반문화의 특징이었던 쾌락주의는 소비자의 자기-권리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호소와 그리 다르지 않다. 넷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또한 반문화적 관념들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그 밖에 둘 사이에는 정보 테크놀로지의 긍정적 힘에 대한 신뢰라는 공유된 특성이 있다. 이와 같은 찰리 기어의 입장은 모두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반문화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담고 있는 가치의 맥락을 중시해서 살펴본다면 신자유주의와 반문화적 사유에 유사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먼저 찰리기어는 신자유주의와 반문화는 모두 집단보다 개인을 우위에 둔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전의 지배적인 경제이론이었던 케인즈주의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독점을 방지하고 분배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케인즈주의가 경제 불황을 불러옴에 따라 대두된 신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중요시한다. 반문화에서도 역시 개인의 자유는 핵심 가치였다. 베트남전쟁에서 젊은 청년들은 전쟁에 징병을 당하였으며, 반문화에서 주장한 자유는 전쟁에 반대하고 징병을 거부하는 의미의 신체적 자유의 측면도 존재하였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물론 국가로 대변되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이를 진정한 의미의 자유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신자유주의 이론에서는 시위나 파업을 인정하지 않으며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하는 등 필요한 경우 국가의 개입을 통한 규제가 이루어진다. 이는 규칙을 지키며, 협상이나 시장을 통해 거래하는 것만 옳다고 보는 관점 때문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와 반문화 모두 조직과 관료체제의 폭정으로부터 개별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는 찰리 기어의 입장에서, ‘개별 역량’이라는 것도 사실은 꽤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반문화운동에서의 개별 역량이란 주로 개인의 내면에 있는 감성적인 측면의 발현에 관심이 있었다면, 신자유주의에서의 개별 역량이란 개인의 이기심으로 표현되는 인간 개개인의 보편적인 본질적 속성에 관심을 둔다. 이기적 개인이 사회를 효율적으로 만든다고 믿는 것이다.
세 번째 의견은 반문화의 특징이었던 쾌락주의가 소비자의 자기-권리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호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반문화, 특히 히피들의 쾌락주의란 주로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지닌 생활양식이었다. 성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 노동활동이나 가정생활 등을 거부하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의 소비자의 자기-권리에 대한 호소란 경제활동에서 보다 효율적인 소비를 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책임에 대한 회피와 효율적 소비에 대한 요구 두 가지는 그리 유사해 보이지 않는다.
찰리 기어는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이 반문화적 관념들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떠올려보면 세금 폐지·축소, 사회 통합 중시, 소수의 특권에 대한 경계, 자유무역 지향 등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정책에는 반문화적 관념들과 상통하는 개념이 존재할 수도 있다. 정부 역할 부정, 규제 축소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과 반문화적 관념 사이에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크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와 반문화 사이에 정보 테크놀로지의 긍정적 힘에 대한 신뢰라는 공유된 특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이는 찰리 기어의 「디지털 문화」4장의 내용들을 고려했을 때 타당해 보인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자기 조절의 사이버네틱스적 판타지의 사례를 들기도 하였고, 반문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반문화는 자주 실리콘 밸리와 결합이 이루어졌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반문화와 신자유주의는 모두 이상적 ‘유토피아’를 실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반문화는 문화 이론에서 하위문화의 일종이고, 신자유주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상 중 하나이다. 분야를 달리 하기 때문에 둘 사이의 비교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비교를 통해 반문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해볼 수 있었고, 그것의 특징과 특성에 맥락을 고려하여 살펴볼 수 있었던 점은 유의미한 점이었다.
처음 찰리 기어의 논제에 대해 생각할 때, 신자유주의와 반문화는 절대로 비슷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할 때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하의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은 가혹하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가 수많은 소외를 불러일으키고, 우울증 및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는 데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에 비해 60-70년대의 반문화는 (후에 어떠한 모순이 드러나고 어떻게 몰락하였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며 ‘소수’에 속하는 이들에게 애정 어린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이 내 머릿속에 존재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찰리 기어의 입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고 또 그 처음의 인식에 따라 생각을 더욱 확장해 보았다.
하지만 논제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읽어보며 찰리 기어의 입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정황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엇보다 찰리 기어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것에 비해 찰리 기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를 지녔다. 어찌되었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팍팍한 현실 사회에 60-70년대 반문화 운동의 지향점들이 섞일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